삼인성호
사람이 셋이면 호랑이도 만들 수 있다.
거짓말이라도 여럿이 모이면 진실이 될 수 있다.
나는 그 일을 살면서 두 번을 경험했다.
첫번째는 고등학교 때 전학가서 두번째는 대학 때.
오늘의 이야기는 대학 때 이야기다.
전에 말했던 쌈지(왜 안 웃어줘?)를 시발점으로
다른 과 선배들에게 고백을 받아버려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짐.
나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었고 나중엔 인사조차조 하지 못 했다.
소문은 점점 몸집을 불려갔고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배척당했다.
소위 말하는 '은따' 같은 것이 되어버림.
나와 말을 하는 사람이 없으니 나는 어떤 소문이 나는지도 몰랐고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 했다.
그래서 더욱 고립되어갔고 나는 그렇게 조용히 묻혀갔다.
내가 나름대로 모아 본 이야기들은.
내 소문은 쌈지로부터 시작되었고 그게 점점 커져
과의 동기들 중 절반이 나의 치맛자락 아래에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결국엔 내가 다른 과에 한명씩 물주를 잡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의 잠자리 스킬이 굉장히 뛰어나셔서 남자들이 죽고 못산다고.
그래서 나를 공공재 처럼 쓰며 선물을 던져준다는데 최근에 받은 것이 고가의 가방임.
...하고다니는 꼬락서니 좀 봐라...그게 말이 되나.
알바비로 먹는데 다 써서 만원짜리 천가방 꼬매다니는 것 좀 봐주고 그런 얘기 좀 하지...
내가 그런거 받았으면 알바를 두탕을 뛰겠냐.
그리고 나도 모르는 내 잠자리 스킬은 님들은 어떻게 아시는지..?
어떤 스킬인지 나도 좀 들을 수는 없는지..?
어디 야망가 같은데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단체 최면처럼 퍼저나갔다.
그래서 제가 함 취재에 나서봤슴돠.
화장실에서 들은 나와 엮인 과 동기들을 인터뷰 해보았습니다.
나와 엮이면 X된다는 것을 아는 나의 동기들은 나를 피하기 바빠서 실패.
아니 말도 못 걸게 하는데 손이라도 잡기는 커녕 뭘 할 수 있다는거죠...?
두번째 시도.
교실에서 낮잠자다 들은 나에게 가방을 사줬다는 컴공과의 학생을 찾으러 감.
놀랍게도 그런 학생은 없다고 함.
나에게 구두를 사줬다는 푸드과의 학생을 찾으러 감.
정말 놀랍게도 그런 학생은 없다고 함.
아니 나만 못 찾아? 이쯤 되면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맞는 세상인가 싶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도 민폐는 끼치기 싫어서 조별과제는 다 함.
욕을 그렇게 얻어 쳐먹으면서도 웃느라 힘들었다. 너희 웃으면서 나 멕이는 거 다 보였음.
하지만 어쩔 수 없음. 다수를 혼자서 상대할 수 없으니 모르는 척 하는 수 밖에.
'너 그렇게 좋아하는 남자애들한테 도와 달라 그래^^'
'여기에 키스신 넣어도 괜찮지? 너 이런거 좋아하잖아^^'
스텝도 연기는 해봐야한다며 시킨 과제에서 여주인공 됨.
조롱거리로 남을 것 같아서 키스신은 겨우 피했다. 진짜. 나 낯가리거든..
친해도 뽀뽀는 안 하지만. 그래도 처음 본 사람이랑 키스신은 좀 아니지 않냐. 내가 배우도 아니고.
처음으로 간 엠티에서는 방에 갇혀 안주 없이 소주만 먹었다.
토하고 오면 또 먹이고 토하고 오면 또 먹이고. 대놓고 멕인 것도 아니고 게임을 해서.
열명이 넘는 인원이 짜고 치는데 내가 당해낼리가 있나.
저 멀리서 소주 한 짝을 가져오는 것을 봤을 때 빨리 도망쳤어야 하는건데..
어느정도 취했을때 그 때 속마음들을 얘기하더라고.
너 고딩 때 찌질이였는데 대학와서 너 모르는 사람만 있다고 일진인 척하는 거 아니냐.
너 눈 했지? (눈 할거였음 나 코부터 고쳤을거임 맹세하고.)
잘 나가는 척 하지마라. 너 앞으로 내 앞에서 담배피면 손가락 분질러 버린다.
술이 취할래도 취할 수가 없었고 잠도 오지 않았다.
나는 다 게워내고 샤워를 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샘.
그리고 뜬 new! 소문 술이 겁나 세서 남자들한테 양주만 뜯어낸다는 소문.
뭐 기타등등 어느 드라마에서도 볼 수 없는 나의 엄청난 업적들이 소문으로 빠르게 퍼짐.
지금 생각해보니 나 왕따였네... 이제야 깨달음.
문제는 우리과는 기숙사로 합숙하고 다른 동아리를 못 들 만큼 매우 바쁜 과.
심지어 타과에 친한 친구를 만들 수도 없는 구조임.
공연하느라 잠도 못 자는데 친구를 만들 수 있을리가.
그래서 조별과제를 겨우 다 했어도 F가 네개나 뜸^^ 나의 첫 학기는 그렇게 망함.
잠결에 아이스 초코와 핫도그를 먹었다는 이유로 나는 처형대에 올랐다.
처형대에 올려진 나는 마구잡이로 날아오는 돌을 그대로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돌을 던졌고 돌을 던지지 않아도 방관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때부터 나는 사회생활에 환멸을 조금 느꼈던 것 같다.
그래도 자퇴는 하기 싫었음. 내 돈 내서 들어갔는데 아깝기도 하고 뭐 입다물고 일이나 해야지.
뭔가 해결방법도 안 나고 말이 많은 나는 심심하고
어쩔 수 없이 다른 과 애들하고 놈. 혼자 놀아도 날 소문인데 내가 뭘 하든.
한 학기는 최악이었는데 그 후 새로 사귄 과 동기와 다른 과 친구들과 X나 재미있게 놀았다.
내 첫학기를 다 보상 받은 느낌이었음. 이 학교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게 결론이 났어도 이건 내가 해결한 부분이고 사과는 내가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정말 반갑지 않은 동기들과의 단톡이 형성되었고 동창회 하자고 연락이 온다.
내가 거기서 웃겠냐.
다른 친구들은 반가울텐데 거기서 분위기 맞춰 웃을 자신이 없다.
걔들은 기억 못하는데 혼자 기억하는 내 모습이 더 크게 느껴질 것 같다.
나는 옹졸해서 사과없이 용서를 하진 못 하겠어.
나는 사과만 받으면 다 용서할 수 있는데.
너도 나한테 사과하고 다시 친구된 거잖아. 왜 그걸 잊어버리니.
다른 친구들이 저 친구는 너를 욕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말려도 믿어줬다.
나와 사이가 안 좋더라도 너는 네 인생이니 누굴 만나고 놀든 신경 안썼잖아.
왜 굳이 나를 끼워 넣으려고 하는거야. 내가 싫다는데. 왜 굳이 안좋은 얘기를 꺼내는건데.
지나간 일이라고 우리는 성인이라고 언제까지 그럴거냐고 그러는데 나는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야.
그때도 성인이었고 지금도 성인이었어. 상처는 사라져도 흔적은 남아.
상처 받은 사람은 있는데 상처를 준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이야기의 끝이 안 보인다.
그래서 나는 연을 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끝내고 싶어 좀.
나는 옹졸하니까 이제 각자 지내자. 역시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라고 마음에 새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를 이유없이 괴롭혔던 그들이 적당히 빌빌대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큰 불행 없이 자잘자잘하게 고통 받으며 유병장수했음 좋겠다.
유약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 잊고있던 소원을 다시 빌게 되다니.
사람을 쉽게 용서할 수 없는 내가 싫다. 진짜. 최악이야.
오늘 이 소원을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저주하는 소원을 비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봐도 존나 찌질하다. 아 자존심 상해. 글에 비속어가 너무 많네...
아무도 내가 블로그를 하는 걸 몰라서 다행이야 진짜.
나는 성인되기는 글러쳐먹었다. 지금에서야 글로 지껄이기만 하고.
근데 이미 지난 일인데 내가 말해서 뭐하겠어 싶은데 갑자기 열은 받고..
진즉에 연을 끊을 걸 나는 왜 그걸 또 여기까지 끌고와서 잊고 있던 걸 다시 들춰지고.
오늘의 교훈. 남의 말은 함부로 하지 말자.
내가 떳떳해야 남을 비난할 수 있다.
그리고 건드릴때 바로바로 지랄을 떨자. 안 그럼 평생의 한으로 남음.
지금은 바로바로 지랄해서 그 자리에서 사과를 받아 상황종료시킴.
아참. 지금 생각해보니. 이왕 소문이 생기는 거 소문대로 살아볼 걸.
소문 진짜 쩔던데. 인생 파란만장 하겠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