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쥬씨 2017. 12. 15. 09:32



나는 고양이를 두 번 키운 적 있다. 임시보호로.

그 중 22살에 함께 했던 아이의 이야기다.


내가 집과 연을 끊고 홀로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하고 싶었던 연극은 생각보다 돈이 안 되었고 아침 저녁으로 투잡을 뛰어가며 지내왔었다.

음향회사라도 들어갈라 치면 혈연도 학연도 경력조차도 없는 나는 일을 구할 수 없었다.

원래 음향은 여자를 잘 구하지 않는다. 하물며 이제 막 졸업한 나를 누가 받아줄까.

더군다나 같은 과 후배인 전남친이 바람을 피고 헤어졌음에도 나를 스토킹 했었기 때문에

어디에서 뭘 하는지 알릴 수 없어 어디가서 일자리를 달라고도 할 수 없었다. 

원하지 않던 회사에서 면접을 보고 그렇게 터덜더털 돌아오던 종각역에서 

연을 끊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빠의 전화를 받고 울음을 터뜨린 날.

너의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가 아는 감독이 키우는 고양이인데 감독이 출장을 자주가서 매일 집에 혼자 있는다고.

한번 출장을 가면 일주일을 가버려 사료가 잔뜩 쌓인 밥그릇 앞에서 주인을 기다린다는 너.

주인 본인도 학대임을 알기에 입양을 보내려는데 시간이 없어 그것조차도 해주질 못 한다고 들었다.

친구는 우울해 하는 나를 위해 그 애를 데려왔다.

입양 보낼때 까지 쓸데 없는 생각하지 말고 얘나 돌보고 있어.


그 애는 이름 조차 없었다. 이미 성묘에 가까운 아이였는데도.

생각나는 이름이 없는데 친구 중 탈색을 한 친구를 닮은 것 같아 그 친구의 별명을 이름 삼았다.

나는 이름 짓는 센스가 없다. 그래도 너무 성의 없는 이름인 것 같아 지금도 미안하다.

아직 중성화도 안 된 상태였고 어느 정도 자란 상태라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다.

그렇게 4개월을 같이 지냈었다. 생각보다 오래 지내버려 정이 들어 헤어질때 우울했다.

사실 이대로 나와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벌이가 없어 당장의 사료도 제대로 된 것을 못 사주는데

내가 어떻게 너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나는 더 빨리 너를 보내려 애썼다.


얼마안되는 월급을 타면 화장실 모래와 사료부터 사고 월세를 냈다. 

그러고 나면 남는 돈이 없어 나는 알바하는 곳에서 한 끼 겨우 때우기 일쑤였다.

가끔은 나도 배가 고파 내가 쟤를 왜 데려왔을까 후회를 한 적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너의 선택은 없었기 때문에 마냥 너를 탓할 수 없었다.

지금의 나라면 그때 그 상황에선 밍밍이를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외롭다는 생각만 했었고 나의 필요성에 의해서만 그 애를 데려올 생각을 했었으니까.

잠깐을 키워도 한 생명을 그렇게 깊게 생각 안 하고 데려온 것은 잘못이었다.

좀 더 많이 제대로 놀아주고 아껴주고 애정을 줬었어야 했는데.

나는 내 상황에 치여 너에게 온전히 신경을 써주지 못 한 것 같아 아직도 마음에 남는다.


매일을 싸우고 화해하고 뽀뽀하고 같이 잠들었다.

너는 정말 얄밉고 정말 사랑스러웠다.

매순간 나를 짜증나게 했고 매순간 나를 웃게했다.

무한도전을 보며 술을 마시던 시간은 너와 장난감 쥐를 가지고 노는 시간으로 변했고

가만히 누워 숨만 쉬던 시간은 네가 오줌을 싼 이불을 세탁하는 시간으로 변했고

혼자 먹어 맛이 없던 저녁도 식탐 있는 너를 저지하느라 바쁘게 먹는 저녁으로 변했다.

너는 정말 나를 짜증나게 하는 방법을 잘 알았다.

그리고 내가 슬플 때 네가 뽀뽀를 해주면 내가 웃는다는 것도 잘 알았다.


버스비가 없어 집으로 걸어오던 날.

눈이 내렸다.

나는 눈을 맞으며 새벽 두시에 어두운 길을 걸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버거워 무서운 것도 모르고 길을 걸었던 것 같다.

펑펑 내리는 눈에 낡은 야상이 젖어가고 신발은 이미 제 색을 잃은 지 오래였다.

내 귀에는 버스커버스커의 정류장이 나오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우산을 들고 기다리던 아빠가 생각났다.

나는 음울함을 애써 누르며 걸었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불은 켜져 있고 현관 앞에는 밍밍이가 앉아 나를 반겼다.

나는 결국 쓰러져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안을라치면 그렇게 지랄 맞던 녀석이 나에게 기대왔다.

나는 그렇게 축축한 몸으로 그 녀석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너에게 미안한 것도 많고 아쉬운 것도 많아.

그래도 말이야.

나는 그때 네가 옆에 있어줘서 지금 나도 이렇게 이곳에 있는 것 같아.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