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쥬씨/소소한 조잘조잘

사람은 건강이 우선이지.

소소한쥬씨 2017. 12. 20. 09:09



나는 어째서 이렇게 평생을 아플까.

언제쯤이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지금 이 생활이 끝나기는 할까.

버거운 삶에 꾸역꾸역 좋은 추억을 심어놓고 흐트려 놓기를 반복하던 날들.

불행은 그동안 애써 막아온 보람 없이 둑이 터지듯 한번에 쏟아져 나를 덮쳤다.

중학교때부터 크론병을 앓아왔다. 주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피검사를 하고 약을 타먹었다.

이게 참 뭣같은 병인게 겉으로 티나는 병이 아닌지라 오해아닌 오해를 많이 산다.

왜 아프지도 않으면서 아픈척을 하냐 묻는 말에 대답할 말은 없다. 

내 뱃속에 시한폭탄 같은 이 것이 언제 나를 괴롭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어떻게 설명할까.

10년을 잘 유지하던 관해기가 끝나버렸다.

한달을 구토와 체기에 시달렸다. 처음 겪는 진짜 아픔에 멋모르고 내과를 들락거렸다.

내 소중한 직장을 대충 다니기 싫어 한달을 그렇게 소화제를 먹으며 버텼다.

어지럼증에 1분정도 정신을 놓고 나서야 겁이 나 주치의를 찾아갔다.

의사선생님은 그렇게 관해기를 오래 연장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나를 위로했다.

여러가지 복잡한 검사 뒤, 결국 입원을 하고 나는 휴직을 신청했다.

한달을 입원하고 퇴원했다. 하지만 회사에 돌아가지 못하고 퇴사했다.

금식하며 항생제와 스테로이드로 버티던 내 몸이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말했다.

몸무게는 38kg. 7키로가 빠진 내 몸은 바람빠진 풍선처럼 걷기조차도 힘들어 했다.

항생제로 머리가 많이 빠져 허리까지 오는 머리를 처음으로 짧게 잘라봤다.

나름 긍정적인 척 이때 하고 싶은 머리를 하자 하고 투블럭도 하고 탈색도 해가며 이것저것 머리에 색을 입혔다.

몸을 추스리고 다시 직장. 그러나 몇 개월 채 안되어 다시 입원.

이미 한번 해본 입원이라 나는 익숙하게 버텼다.

알약 열개는 한번에 삼킬 수 있었고 금식을 해도 몰려오는 식욕을 잘 참아냈다.

검사 받으라 하면 안내 없이도 잘 찾아가 알아서 받고 올 정도였다.

그리고 3주만에 퇴원했다. 살도 생각보다 많이 안 빠졌고 이번엔 조금 더 빨리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 이제 이 일은 하기 힘들겠구나. 언젠가 쓰러질 수 있으니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해야지.

운동을 하고 살을 찌웠다. 생에 처음으로 50키로를 넘어봤다.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학원을 다니던 중 세번째 입원. 나는 배우는 것조차 안되는 걸까.

어떤 노력조차도 할 수 없이 병원 침대에 갇혀 지난 입원들 보다 더 긴 입원을 했다.

진통제를 맞아야 잘 수 있었다. 우울증까지 겹쳐 잠을 잘 수 없었던 나는 진통제와 안정제에 의존했다.

매일 겨우 잠들라치면 새벽 4시에 깨워져 피를 뽑았고 바늘이 무서워 조용히 찔끔거리며 다시 잠든다.

그리고 새벽 5시에 다시 깨워져 엑스레이를 찍으러 1층으로 내려간다. 꾸벅꾸벅 졸며 찍는다.

그리고 다시 겨우 잠들면 아침 7시. 아침시간. 나는 금식이라 식사가 없다.

다른 환자들이 아침을 먹는다. 나는 커튼을 치고 안대를 끼고 다시 잠들려 노력한다.

며칠 뒤. 상태가 안 좋아져 코에 호스를 연결했다. 전에 응급실에서 한번 시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던.

나는 시도도 하기 전에 애처럼 울며 도망갔다. 침대를 벗어나기도 전에 붙잡혔지만.

상황에 지쳐 예민해진 나는 조금만 불편해도 불같이 폭발했다. 사실 그렇게까지 울 일도 아니었는데.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아픈지 억울했다. 엉엉 울었다.

호스를 연결하면 물도 마시면 안 된다. 나는 두달동안 물 조차도 허락받지 못 했다.

내 몸에서 나온 관은 기계로 연결 되었다. 나의 행동반경은 더더욱 줄어들었다.

화장실 한번 가려해도 부시럭대며 기계에서 호스를 잠깐 떼고 링거 줄들을 정리 해야한다.

새벽에 엑스레이 찍으러 갈때는 그냥 침대째로 나를 옮겼다. 걸을 수 있는데..

나는 흘끗거리며 나를 구경하는 다른 환자들의 눈을 피해 자는 척 했다.

생각이란 것은 하면 할수록 자라는데 안 좋은 생각일수록 불행을 양분 삼아 쑥쑥 자란다.

나는 침대에 앉아 매일 창 밖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저기 보이는 숲 사이로 숨으면 아무도 나를 찾지 못 하겠지.

링거 줄이 생각보다 질기던데. 나에게 달린 링거줄이 다섯개니까 어떻게 안 될까.

근데 내가 이걸 끌고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 나가다 잡히겠지.

어차피 키가 작아서 줄을 매달 수도 없구나. 음 이건 안 될 것 같군.

그래도 한순간 정도는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근데 귀찮기도 하네. 우선 잠이나 잘까.

결국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멈췄다. 사실 나는 나의 위험한 생각들을 행동으로 시도해 볼 생각이 없었다.

그런 위험한 생각들은 나의 키가 다 자라기 전에 패기넘치게 도전해본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패했고 크나큰 아픔과 후회만 남았기 때문에. 아직도 후회하고 있는 일들이다.

그 때 깨달은 것. 아. 이게 엄청 용기가 필요한 일이구나. 나는 그래도 아직은 겁이 많구나.

단순 도망은 이제 사양이야. 무엇보다도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마음을 정리하려 애썼지만 옆 자리 환자들이 퇴원하는 날이면 이불속에서 조용히 훌쩍거렸다.

결국 장폐색이 진행되었고 수술을 받게 되었다. 

병원측에서는 어떻게든 수술없이 해결을 해보려 했었다. 나는 아직 젊으니 수술을 하기 꺼려했다.

근데 장이 완전히 막혀버렸다면 방법이 없지. 나는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금식을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이미 두달을 물도 안마시고 살았으니.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드디어 어떻게든 이 상황을 끝낼 수 있다는 거 아냐?

수술 후 부작용이 생겨 상황이 악화된다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동의서를 쓰면서도 싱글벙글.

똑같은 것들을 계속 물어보며 확인해도 떨려하면서도 싱글벙글 이었다.

나는 병원에 온 이후 처음으로 웃으면서 말을 많이 했다.

그와중에 겁은 많아서 침대를 타고 수술실로 가는 도중에도 계속 주절댔다.


수면마취 후에 목에 관을 삽입 한다는데 제가 수면내시경을 몇번 받아봤거든요..

근데 그건 자면서도 느낌이 다 나던데.. 혹시 목에 관 삽입 할때도 아플까요?

이거 코에 있는 호스는 언제 뺄 수 있을까요? 너무 답답해요. 얘가 목을 건드려서 목에서 피가나요.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미리 자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너무 무서운데...


침대를 끌고가던 선생님들이 웃으면서 대답해줬다. 좋으신 분들. 귀찮을 법도 한데.


음. 수술시간은 두시간정도 걸릴거구. 처음에 하는 수면 마취는 내시경때와 비교도 안 되게 세게 들어가서 환자분은 뭘 해도 느낌도 안 날거예요. 전신마취는 몸이 잠시 죽는다고 생각하시면 될거예요. 코에 연결된 호스는 수술이 끝나도 당분간 할 것 같고 수술실 들어가고 나서 마취를 할거예요. 아까 물어봤던 것들 있죠? 그거 마지막으로 한번 더 확인 해야하니까요. 너무 무서워 하지 마세요. 두시간동안 푹 잔다고 생각해요.


아뇨.. 선생님.. 더 무서워졌어요...


수술실은 너무 추웠고 의사쌤들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오셨다.

겉옷이 벗겨지고 담요같은 것이 덮여졌다. 팔만 대롱대롱 내밀고 있던 차에 잠시 생각이 든게.

아. 제모. 망할. 환자가 제모할 시간이 어디있어. 아주그냥 정글이겠네. 병원에 온 이후 처음으로 창피해졌다.

뭔가 나를 둘러싸고 서계시는데 아 무서워 그냥 빨리 마취ㄷ....


눈을 떠보니 회복실이었다. 엄청 추웠고 졸렸다. 간호사님... 춥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춥습니다....

간호사님이 담요를 덮어주고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기계를 넣어줬다.

저기.. 제가 먼저 퇴원한 환자들을 많이 봤는데요.. 수술 받고 들어오면 못 자게 하던데..

환자님은 주무셔도 됩니다. 지금만 버텨주세요. 숨 많이 쉬시구요.

그리고 나는 다시 잠들었다. 하루를 꼬박 자고 일어났다.

그 뒤 일주일을 병원에서 더 지냈다. 중간중간 수혈도 받고 피검사도 받고.

부작용은 없었다. 워낙 회복력과 면역력이 좋은 사람이라 잠이 많은 것 빼고는 수술받으면 대부분 난다는 열조차도 나지 않고 잘만 잤다. 물론 안대와 무민을 꼭곡 챙기고.

코에 호스를 뺐다. 산책을 하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병원을 돌아다녔다. 피 주머니를 딸랑거리며 링거대의 부축을 받으며.

아프진 않았다. 처음엔 부축을 받아 일어났지만 나중에는 스킬을 터득해 혼자서도 잘 일어났다.

가끔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면 뱃가죽이 찢어지는 느낌이 났지만.

3일에 한번 링거를 갈때마다 안 씻어도 된다해도 부득부득 씻었는데

수술 이후엔 내 배를 보기 겁나 씻지도 못해 그지꼴을 해도 창피한 줄 모르고 돌아다녔다.

처음 무언가를 입에 넣었을때 나는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비록 묽어서 뭣도 안 보이는 미음이었고 세숟갈이 전부였지만 매우 기뻤다.

이틀 뒤 쌀알이 보이는 죽으로 바뀌었고 입맛이 없어도 착실히 입에 집어넣었다.

사실 몰래 카스테라 두입 먹음. 겁나서 녹여먹긴 했지만 그렇게 달달할 수가 없었다.

입안에서 느껴지던 시큼한 약 냄새가 좀 사그러드는 기분이었다.

실밥을 뽑진 않았지만 퇴원해도 좋다는 말에 퇴원함. 

여기서만 말하는 건데 사실 퇴원하고도 2주는 샤워도 못함.

결론은 3주를 샤워 안 함ㅋㅋㅋㅋㅋㅋㅋ 실밥을 안 뽑은 내 배를 보기가 너무 무서웠다.

배를 구부리지 못해 질질 흘려가며 양치와 세수만 할 뿐.

아 중간중간 머리도 감았다. 비옷 입고 소중히 배를 감싸고 의자에 앉아서 머리만 내놓으면 아빠가 머리 감겨줌

실밥을 뽑은 후 바로 집가서 씻었는데 배가 안 예쁘게 꼬매져서 조금 속상했다.

지금도 배 한가운데에 대왕지렁이가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지금은 시큼거리는 몸에서 약 냄새도 안 남. 약냄새 때문에 한동안 별명 약쟁이었음.

치킨도 먹고 피자도 먹고 짜장면도 먹고 맨날 뭘 자꾸 먹음.

내가 입원한 내내 맛있는 녀석들 보면서 얼마나 참았는데. 다 먹어야지.

요즘은 몬엑이들 먹는 짤 보는 낙에 산다. 진짜 잘 먹어. 결국 뭔갈 시켜먹게 됨.

13키로가 빠졌는데 8키로가 다시 찜ㅋㅋㅋㅋㅋㅋ중간이 없어도 너무 없어.

배만 쪄서 바지 다 새로삼ㅋㅋㅋㅋ그래서 요즘 운동 열심히 한다. 뱃살뺄라고.

사실 죽다 살았다 해도 상황이 나아진 것은 없고 내 멘탈 상태도 그닥 좋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요양중이고 조심해야하고 이젠 모아둔 돈도 머릿 속에 남은 지식도 없다.

약을 하도 많이 먹어서인지 집중력도 많이 떨어지고 기억력도 떨어짐. 어제 먹은 저녁도 가물가물함.

멘탈은 원래 좋은 편이 아니라서 요즘도 종종 우울감을 느낀다. 이건 평생 갈 듯.

그래도 최악을 경험해서인지 소소한 행복을 뜬금없이 느끼는 때가 생겼다.

먹고 싶은 것을 바로 먹는다거나 친구를 만난다거나 갖고 싶은 물건을 산다거나.

그때는 앞이 안 보여 어떤 다짐이나 약속을 할 수 없었는데.


그래도 좀 더 버텨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잘 버텨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