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쥬씨/소소한 조잘조잘

술이 웬수여 하다가도 뜻밖의 행운이 있을지도.

소소한쥬씨 2017. 11. 13. 23:10



2학년이 되고 나는 같은 동아리 친구 4명과 같이 살았다.

1학년 1학기에는 기숙사, 2학기에는 친구와 둘이 살다가 다른 자취방에 같이 살던 다른 친구 둘과 살림을 합쳤다.

결론은 그 좁은 방에 인원이 두배가 되었다는 것. 우리는 자발적으로 낑겨 살았다.

이때 무척 즐겁고 활발하게 논 만큼 이런 저런 웃긴 일이 많았다.



거의 이런 분위기. 

우리를 지켜봤던 동아리 선배 한 명은 내 인생 최고의 각각 다르게 미친 애들이었다고 회상했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우리 동아리도 드디어 신입생을 받았다.

그래서 열린 신입생 환영회.


나는 500ml 사건 이후로 맥주만 몇 잔 마시고 치킨 흡입에 열을 올렸다.

학교 앞에 은지이모 라는 술집이 있는데 진짜 치킨 세상존맛.

일주일에 두번은 갔다. 다른 날은 꼬꼬아찌에 가야하거든.

 

한창 다들 마시고 수다를 떠는데 내 눈에 계속 거슬리던 녀석이 하나 있었다.

우리 동아리의 유일한 남자 신입생. (나중에 남학생이 몇 명 더 들어옴.)

183의 키와 넓직한 어깨로 얼굴도 준수해 멀리서도 눈에 띄었음.


하지만 내가 계속 쳐다본 이유는.

술을 처음 먹어본다는 그 녀석의 발언과 그 발언에 맞지 않는 지금 상황이었다.

그 녀석은 소주 한 병을 돌파한 순간부터 



...... 이 상태였기 때문이다. 주위에선 신나서 계속 멕이고 있었다.

쟤 통학인데 어떻게 집에 가냐...


뭐. 오늘 처음 본 사이에 내가 상관할바는 아니고 남자 선배들이 알아서 챙겨주겠거니 했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같이 사는 친구 두명은 주말이라고 본가로 간다고 먼저 갔다.

그렇게 하나 둘 떠나고

남은 건 본가에 안가는 나와 주당인 티벳. 남자선배 둘. 그리고 그녀석.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가게 안이 묘하게 고요했다.

...설마...마설......마사카....

흥이 오른 남자 선배 둘은 구석에 찌그러져 자고 있는 녀석을 발견하지 못하고

본의아니게 그 녀석을 버리고 튀어버렸다.

그리고 그 옆에 수저를 거꾸도 들고 미역국을 먹던 티벳.


Aㅏ.



진짜 버리고 튀고싶다. 

뒤에선 은지이모가 혹시나 우리가 데려가지 않을까 감시중이었고

눈치 없는 티벳은 그 녀석을 건드리며 낄낄대기 바빴다. 내가 싸움만 잘했어도..휴..


티벳 - 깔깔깔깔!!!

(티벳 -당시 21세. 주당 룸메이트. 아이엠과 매우 닮음. 여장한 창균이 보고 놀래서 바로 친구에게 전화함.)



나는 답이 정해져 있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나는 망치질과 톱질로 단련되어 있었으므로 기절한 그 녀석을 등에 업고 

(물론 키가 너무 커서 발은 질질 끌고 갔다. 내가 업고가다 바지 밑단 찢어 먹음. 내 키 158....) 

그나마 걸을 수 있는 티벳은 팔짱을 끼고 전진했다.

우리의 자취방은 고작 걸어서 3분. 나에게는 30km의 여정이었음.


가는 내내 버리고 싶었다. 진짜로. 


겨우 도착한 나는 이불하나를 깔아 그 녀석을 눕히고 하나를 또 깔아 티벳을 눕힘.

그리고 지친 나는 옆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재난이 시작되었다.


곤히 자는 줄 알았던 그 녀석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아닐거야.... 아니겠지.


아니긴 개뿔.

그는 누운 상태에서 볼케이노 쇼를 보여줬다.

순간 누워서 구토를 하면 기도가 막힐 수 있다는 기사는 언뜻 본 터라 바로 얼굴을 옆으로 돌려줬고

순식간에 이불과 그 녀석의 옷이 화려한 무늬로 가득 찼다.

녀석도 매운 불닭을 다시 꺼내는 것이 괴로운지 켁켁 거리며 난리를 침.



(와 근데 이거 진짜 실습갈때 티벳이랑 너무 똑같다 저 머리 하고 갔었는데.)



티벳 - ...? 뭐야? 뭔데.? 얘 왜 여기 있어....?


본능적으로 어떤 위험을 느낀 티벳이 깨어나 몸을 피하며 나에게 물었다.

네가 한 잔만 덜 마셨어도... 이 새끼가 우리집에 들어올 일은 없었어....


그 녀석은 한 참을 켁켁거리다 다시 그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아. 진짜. 망했어. 저거 내 이불. 저 씨......

허락없이 다른 친구의 침구를 낯선 이에게 주기 뭐해 내 것을 주었더니 저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다행이면서도 절망스러웠다.


[소소의 분노이(가) +100 되었습니다.]

넌 일어나면 나에게 죽었음.


일단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고 우리는 잠시 고민을 했다.

깨워도 눈 풀린 상태로 정신도 못 차리는 애를 내 쫓을 순 없고.

그렇다고 이시간에 어디 갈 수도 없고. 이 방에 있자니 고역이고.


결론은 하나.

저 녀석을 화장실에 가두고 이불을 치우자.

가두려고 했지만 이 녀석이 반 쯤 소화된 불닭을 한껏 뒤집어 써서 옷을 벗겨야 했다.

한명이 애를 앉히고 한 명이 애 만세시켜서 윗옷을 벗김.

문제는 바지. 

우리는 서로 눈치만 봤다. 이대로 끌고가면 다른 곳도 더러워지는데....

용기 있는 티벳이 총대를 맸다.

'내가 지퍼를 열게! 니가 바지 밑단을 잡아서 내려!'



나는 티벳이 저지른 오늘의 만행을 용서하기로 했다.


티벳이 눈을 질끈 감고 철컥 푸는 순간 나는 바지 밑단을 잡고 당겼다.

그리고 딸려 내려가려는 속옷을 티벳이 기겁을 하고 잡아 올려서 

우리는 서로가 속상할 수 있는 일을 미연에 방지했다.


그렇게 사각팬티 바람인 그를 화장실로 굴려 보내고 우리는 이불 빨리를 함.

그리고 이불하나를 새로 깔고 앉아서 잠시 쉼.


하지만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화장실에 누워있던 그녀석이 눈이 시뻘개진 상태로 기어나왔기 때문.

그는 우리가 말릴 새도 없이 새로 깐 이불에 새로운 무늬를 새겨주었다.

진짜 내가 막 진심으로 욕하는 편은 아닌데... 이건 진짜 개새끼아니냐...




소소- 야. 내 망치 어디있냐. 저거 그냥 때리고 감옥갈란다.

티벳 - 야 나는 그래도 저정도는 아니지?

소소 - 정도는 비슷하지만 넌 그래도 빨리 끝나.

티벳 - ...미안. 내가 이불빨게.


그렇게 2차 전쟁을 치르고 나니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이불빨래를 하느라 밤을 샌 것이다.



(티벳 자고 인난거랑 존똑인 것을 찾아냄. 아침에 인나면 저 부시시한 머리를 저러고 대충 묶고 앉아있음.)


... 소주 한 잔 하고 싶다.


소주는 됐고 몇시간동안 물 한 잔 못 마신 우리는 집 앞 편의점으로 가서 우리가 마실 콜라와

숙취해소제를 사서 집으로 들어왔다.


문을 여니 팬티바람의 그 녀석이 우리 방 한가운데에 망연자실 앉아있었다.



그 녀석 - 서, 선배님들....? 여, 여기는...? 제가 왜.....?


라고 말하며 공포에 질린 얼굴로 우리를 봤다.

아니 모르는 곳에 팬티바람이니 놀라는 건 이해가 가는데 

그런 눈으로 우릴 의심하는 건 너무 한 거 아니냐...?


소소 - ( 해탈 ) 일단 이거 마시고 친구한테 전화해서 옷 좀 갖다 달라 해.


그리고 그는 내 박스티를 쫄티처럼 입고 티벳의 바지를 핫팬츠처럼 입은 상태로

티벳이 해장용으로 시킨 갈비탕까지 야무지게 먹은 후 친구가 갖다 준 옷을 입고 퇴장했다.


그가 나간 후 우리끼리 야 쟤는 이제 동아리 안 나오겠다 했는데 

그는 동아리를 계속 다녔고 1년단 우리의 치킨 셔틀을 자청했다.

그렇게 치킨도 갖다주고 피자도 갖다주고 하다가 티벳에게 마음도 갖다줘버림.


그렇게 치킨 셔틀은 올 해 여름. 티벳의 남편이 되었다.

나는 그때 그의 바지를 직접 벗긴 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