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CT찍는 날.
아침부터 너무 기분이 안좋았다.
병원가는 날은 그놈의 주사 때문에 항상 예민해져 있지만 특히나 CT는 조영제 때문에 제일 두꺼운 바늘을 써서 더 예민함.
검사를 받을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안 아프려교 하는 검사인데 어째서인지 더 피곤하고 몸이 아파지는 기분이다.
2시 30분 예약이라 10시부터 금식. 물도 마시지 말래. 으으 난 금식도 싫어. 배고파.
뭐.. 네시간정도 물을 안 마실 수는 있지만 왠지 먹지 말라니까 목이 마르고 그르네...
심지어 병원도 멀어... 대학병원이라 다른지역까지 나가야 한다고...그나마 버스 한방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있어서 다행이야.
근데 버스 노선의 거의 끝에서 끝이기 때문에 가는데만 한시간 반이 걸린다.
가는 내내 자면서 간 것 같다. 자다가 설핏 깼는데 어느 고딩이랑 눈이 마주침. 아. 나 눈뜨고 잤나. 괜히 민망해진다.
편하게 잘때는 잠버릇도 없고 조용히 눈 잘감고 자는데 불편하게 자면 이상하게 눈을 뜨고 잔단 말이지... 눈이 시큰시큰했다.
그리고 도착.
도착하자마자 피부터 뽑으라 했으니까 채혈실로 직행했다. 익숙하게 찾아가는 것이 좀 별로임.
환자카드를 내니까 바로 CT찍으시져? 저쪽으로 따로 가셔서 기다리세요 담당 불러드릴게요.
의자에 앉아 경건하게 마음의 준비를 했다. 주섬주섬 겉옷도 미리 벗어두고.
곧이어 수간호사 포스를 내뿜으시며 한분이 나에게 오셨다.
바늘을 촤르륵 꺼내는 순간 눈앞이 핑 도는 것이 현기증이 난다. 어이구... 저 두꺼운 것을 ......
보퐁 팔꿈치 앞쪽이나 팔뚝에 꽂지만 여의치 않았음. 주사자국이 많네요... 입원을 오래하셨나봐요.
넹... 일년이 지나도 그게 점이 된건지 도통 사라지지가 않네요. 그나저나 제발 한번에...한번에 꽂아주세요....
손등에 꽂기로 함. 세상... 손등 아픈데.... 심지어 손목 뼈 부근이라니... 벌써부터 뼈가 시큰거린다.
간호사님은 한방에 핏줄을 찾으셨지만 좀 여의치 않으셨는지 한참을 바늘을 요리조리 움직이심.
으으...으으어어어.... 노래에 집중하려 애썼다. 운명을 흑흑 넘어...으억...디스...흑....이어...어어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게 한참을 피를 뽑으시고 고정해주심.
자 이제 CT찍으러 가세요~ 나는 굽신거리며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하고 재빨리 나옴. 빨리 찍고 이걸 뺄거야.
으으으... 다시 봐도 끔찍.... 입원할때도 저거 꽂고 링거 세네개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었는데...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옷을 갈아입으라 해서 환자복으로 갈아입는데 저거 건드릴까봐 혼자 고요히 꿈틀거리며 옷을 갈아입음.
다음부터는 속옷 안 입고 가버릴거야. 바지도 지퍼때문에 갈아입느라 혼남. 다음엔 원피스 입고 가야겠다.
쫄보 어디 안간다고 조영제 들어갈때도 천천히...천천히 약 넣어주세여....핏줄이... 따가와요....ㅠㅠㅠㅠㅠ
조영제가 들어가면 몸이 뜨끈뜨끈해진다. 그리고 목구명에서 묘하게 이상한 약맛이 난다.
근데 이건 음.... 느낌이 별로군. 정도라서 괜찮아. 저놈의 바늘만 아니면.
나오자마자 바늘 빼주셔서 너무 좋았다.
왜 30분 이내에 떼달라고 한걸까.
조영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20분만 있다 가라고 하셔서 얌전히 기다림.
이전에도 몇번 받아봤는데 별다른 부작용이 없었음. 나는 웬만한 약에는 부작용이 없는 듯.
그래도 나는 바늘만 아니면 말을 잘 듣는 편인 환자이므로 얌전히 기다림.
그리고 20분이 되었을때 저 밴드도 떼도 되는거겠지 싶어 슬쩍 뜯어보니 피가 조금씩 나오더라고 애써 무시하고 버림.
피도 뽑았겠다. 시간도 벌써 세시가 조금 넘은 시간.
배가 고픈데... 짜장면이 먹고 싶었다. 내가 호수공원쪽은 놀러 자주 가봤어도 이 쪽은 입원 아님 진료로만 와봐서 뭘 먹어본적이 없어.
설마 짜장면집 하나 없겠냐. 그래도 여기 나름대로 번화가 아닌가.
내 착각이었다.
월요일에 비가 많이 왔잖아? 나는 우산을 쓰고 삼십분을 넘게 헤맴. 진짜 입에서 욕이 나오는데 이쯤되면 안 먹음 안 될 것 같아.
사실 애저녁에 도착했는데 거기 없어졌더라? 네이버지도... 무슨일이야...내가 너 이러라고 꼬박꼬박 업데이트 시켜주는줄 알아?
그러고 바로 옆 블록에 또 있다고 해서 가는데 하...참나... 아니...한 블록이 우리 아파트+옆아파트 단지보다 크면 어쩌자는거지...?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바람은 오지게 불고 머리고 바지고 다 젖었고 난 이제 집에 가고 싶고. 버스정류장은 이미 멀어졌고. 진퇴양난임.
결국 꾸역꾸역 도착. 서러움을 담아 탕짜면을 시킴.
이때까진 행복했다.
첫입 - 헐 대박 여기 대박맛집 완전 맛있어.
두입 - ....응?
세입 -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맛이 없어.... 나 웬만하면 짜장면 다 맛있게 먹는데 이거 너무 심한거 아니오.. 면 왜 납작+두꺼워...? 탕수육 왜 누린내나?ㅠㅠㅠㅠㅠㅠㅠ
여러모로 눈물의 짜장면이었음.
푹 젖은 상태로 버스 정류장으로 가 버스를 타고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집으로 돌아감.
와 너무 춥고 졸리고.... 집에 오니까 몸이 흐물흐물 풀렸다.
바로 욕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에 몸을 욱여넣고 멍하니 있었음.
그와중에ㅋㅋㅋㅋㅋㅋ피 뽑았으니까ㅋㅋㅋ두꺼운 바늘이니까ㅋㅋㅋㅋ물 안 들어가게 할라고 팔 한쪽 들고 있었음ㅋㅋㅋㅋㅋ
씻고나니까 몸을 주체할 수 없이 졸음이 밀려왔다.
머리도 못말리고 방으로 들어와 순자와 민식이를 껴안음. 익숙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코로 확 들어오더니 최면에 걸리듯 잠들었다.
눈을 뜨니 새벽 다섯시. 출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