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집은 기념일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사준다.
내 생일은 다다음주 월요일이지만 댜니는 혹시 모르니 미리 사준다고 일 끝나고 지하철 역에서 보자고 했다.
너무 이른건 아닌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작년엔 거의 한달전에 원피스를 선물받았던 것 같다.
건물을 나서며 생각했다. '오늘 날씨 진짜 좋다!'
5분도 안되어 내가 왜 검은 옷을 입었을까 후회를 했다.
검정 반팔에 검정 슬랙스를 입었는데 이 동네 빛은 내가 다 흡수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댜니는 10분을 늦었다.
그대는 한여름이 아닌것을 감사히 여겼으면 한다.
아직은 음료수 하나로 퉁칠 인내심이 남아있으니.
2.
지하철을 타고 일산역에서 내려 버스를 탔다.
일산에 갈때마다 느끼는거지만 버스로 한방에 가려면 빙글빙글 돌아 한시간 반을 타고 가야하고
지하철과 버스를 병행하면 4~50분 정도 걸리는 대신 갈아타야 한다는 것이 별로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홍대를 가는 것이 편하지.
일단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으려는데 초밥이 먹고싶었는데 초밥집 다 브레이크타임이 걸려있더라고.
그냥 웨돔에 가서 가정식을 먹었다. 초밥이고 나발이고 너무 배고파서 일단 밥을 먹어야했어.
마음 식당이었던가.
우선 도착하자마자 맥주를 한병시켰다.
블루문이 캐나다 맥주인데 엄청 맛있다나.
나는 맥주맛을 잘 모른다. 다 거기서 거기 같어.. 그리고 생각보다 시원하지 않았다.
맥주 한 잔을 다 마실때쯤 음식이 나왔는데,
우연히 찾아들어간 음식점 치고는 상당히 맛있게 먹었다.
댜니는 차돌박이 된장찌개 정식을 시키고 나는 제육정식을 시킴.
이 가게의 제육볶음은 특이하게도 갈색이다. 특유의 매캐한 매콤함이 없고 간장의 달달함이 섞인 매콤함이 있었다.
난 특히 저 콩나물국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시원하고 간도 딱 맞는 것이 내 스타일이었음.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많았는데 오이무침과 당근을 제외하고 다 먹은 것 같다. 반찬이 조금 적은 것 같아 좀 아쉬웠다.
차돌박이 된장찌개는 나에게 좀 많이 짠 편이었다.
나는 싱겁게 먹는 편이고 댜니는 짜게 먹는 편인데 댜니는 대만족을 하며 맛있게 먹더라. 차돌박이가 많이 들어있어 좋았다.
아 그리고 이 집 밥 엄청 많이 준다. 저 반찬과 고기를 다 먹어도 밥이 반정도 남았다.
나는 반찬보다 밥을 더 많이 먹는 편인데도 말이다.
저 큰 그릇이 아마 우리집 밥그릇 두배는 될 것 같다.
잘먹었습니다.
3.
그리고 입가심으로 주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 이름을 안봐서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인테리어도 예쁘고 가게 구석에는 작은 꽃집도 있어 꽃을 살 수 있었다.
내 탄생화가 장미인데 그전부터 내 생일날 파란색 장미를 받는 건 어떨까 라는 생각을 종종했다.
파란색 장미의 원래 꽃말은 '불가능'인데 완전한 파란색을 가진 장미를 만들 수 없어 붙여졌었다고 한다.
시대가 지나고 기술이 발전하며 완벽한 파란 장미를 만들었을때 꽃말이 바뀌었다. '기적'
이리저리 갖다붙여 엮은 꽃말이라고 해도 나는 이 꽃말이 마음에 든다.
내가 태어난 것 자체가 엄청난 우연이고 기적일테니까.
그리고 지금 내가 불가능이라 여겼던 일들이 이런저런 노력을 한다면 언젠가는 작은 기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도 있고.
나는 장미로 태어났다. 아직 파란장미가 되기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내 손에 파란 장미가 쥐어진다면 기분이 어떨까 궁금하다.
말이 길어졌는데 결론은 이 근방 꽃집을 다 돌아봐도 파란 장미는 판매를 하지 않더라고.
가끔 느끼는건데 내가 봐도 난 말이 너무 많아. 헛소리도 잘하고.
예쁜 카페다. 식물도 많고 햇빛도 잘들고 가구도 예쁘고.
우리가 앉았던 벽면엔 빔프로젝더가 있어 영화가 무성으로 나오고 있었다. ( 그 무성아님.)
마침 댜니가 좋아하는 어바웃 타임이 나오고 있어 흥분한 댜니의 영화 설명을 들으며 음료를 기다렸다.
댜니는 로맨틱한 영화와 소설을 좋아한다. 나랑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르다. 뭐라 설명하긴 힘들지만.
예쁜잔에 음료가 나왔다. 빨대 색이 아쉽다고 생각하고 쭉 들이키려 본 순간 이게 하트 빨대란걸 알았다.
그래도 안 어울려. 오곡라떼에 빨간 빨대는 좀 그렇지 않나.
댜니가 시킨 수박주스는 달고 시원했다.
문제는 내 오곡라떼. 달지도 않았고 너무 밍숭맹숭했다. 아마 가루가 덜 풀린 것 같았다.
한 모금 쭉 빨아들이니 입안에 알갱이가 우수수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면.
아. 잘못 시켰다.
나도 청포도 에이드 그런거 시킬걸.
4.
근처에 있는 롯데백화점에 갔다.
미리 선물을 사준다 해서 3년동안 열심히 쓴 지갑이 생각나 지갑을 바꾸기로 했다.
나는 선택하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 한다. 다 괜찮아 보이고 예뻐보이는구만.
그래서 미리 기준을 정했지.
반지갑 보다도 작은 미니 사이즈여야 할 것. 가죽 무늬 외의 무늬는 ㄴㄴ 깔끔해야한다.
걷에 지퍼가 보이면 안됨. 무조건 깔끔. 원래는 남자지갑으로 머니클립을 살까 고민했지만 댜니가 말렸다.
고르고 골라 사다보니 원래 있던 내 미니지갑보다 더 작은 것을 사버렸다.
하지만 예전 것과 달리 지폐 넣는 곳도 따로 있고 안에 동전을 넣는 곳도 따로 있어서 상당히 만족했다.
어차피 매일 가지고 다니는 카드로 다섯장 안팍이고.. 지갑에 많이 넣어 다니질 않으니 큰 것은 필요없다.
햐... 다시봐도 씹덕터져.... 안에 보라색인 것도 너무 귀여워. 일년동안 잘해보자. 잘하면 그 이후에도 함께해보고.
덕후는 내 지갑을 보더니 뭐 저렇게 작은 걸 샀냐고 타박함. 그럴거면 신문지로 지갑 만들어서 다니라고.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너는 위기상황일때 벽돌대신 쓰려고 그 큰지갑을 들고 댕기는거니? 그정도면 둔기 아니냐고.
전에 나도 나이가 찼으니 어느정도 가격이 나가는 명품지갑을 하나 사볼까 했는데
요양하는 환자에게 사치란 생각이 들었다. 이 지갑 다음엔 내 돈으로 좋은 지갑을 현금으로 지른다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비싼 것을 현금으로 한번에 지른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그래서 회사 다닐때 돈을 많이 못 모았나.
지갑은 엄마가 댜니를 통해 전하는 선물. 댜니는 다른거 받고 싶은 것 없냐 물었다.
현재 내가 사고 싶다 생각한 것은 시계 반지 향수인데 향수는 내가 살거고.
시계는 영 부담스러울 것 같아 작은 반지를 하나 받기로 했다.
검지에 낄만한 심플한 반지를 받았다. 사이즈가 없어 2주뒤에 받기로 한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오히려 내가 개인적으로 사려는 반지보다 두배정도는 더 비싼 반지를 받아버렸다.
백금으로 할까 로즈골드로 할까 하다가 백금은 빨리 질린다는 말에 로즈골드로 사버림.
내 생일에 나도 나에게 주는 선물로 반지를 하나 살까 했는데 사서 같이 낄까 아님 이것만 끼고 다닐까 약간 고민이 된다.
겨울이 오면 나는 엄마와 댜니의 연이은 생일에 개털이 된다는 사실이 확정이 된 것 같다.
아무튼 오랜만에 매일 끼고 다닐만한 반지가 생겼다.
5.
집으로 오는 길은 체력이 바닥나 버스를 타고 쭉 왔다.
나도 모르는새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내리기 두정거장 전이다.
같은 자세로 한시간이 넘게 자다보니 엉덩이가 저렸다.
눈이 시린거보니 아무래도 불편한 자세로 자서 눈을 좀 뜨고 잔 것 같은데
이때 버스를 탄 사람들이 많이 놀라지 않았을까 걱정이 된다.
저 멀리 막내가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우리는 한정거장 일찍 내려 막내의 뒤를 살금살금 뒤따라갔다.
댜니는 막내의 이어폰을 빼냈고 나는 어깨를 잡으며 왁! 놀래켰다.
막내는 눈이 땡그래져 으악! 하고 놀랬고 우리는 깔깔 거리며 슈퍼로 갔다.
세 자매는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며 집으로 들어갔다.
언니.. 언니는 멀쩡한 사람이 왜그러지? 왜 큰언니 따라서 이상한 행동을 해ㅠㅠㅠㅠㅠ
잠깐 막내야. 그 얘기는 혹시 내가 또라이라고 말하고 싶은거니?
맞는거 같은데?
아니야 큰언니. 그건 큰언니가 크게 오해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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