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쥬씨/헛소리대행진
.
마지막 데이트
그 날.
네 잔의 커피를 비우고
한 번 비워낸 재떨이에 담배가 수북히 쌓이고 난 뒤에야
쳇바퀴처럼 제자리만 달리던 우리의 이야기를 겨우 끝낼 수 있었다.
수 없이 끝인사를 반복하며
울고 웃고 화내고 안타까워 했다.
우리의 오늘은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었다.
이제는 마주할 수 없는 사이가 될 것이라는 결말.
우리는 천천히 그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리고 짧은 침묵.
나는 말 없이 눈물만 흘리고
너는 말 없이 한숨만 내쉰다.
정말 마지막이 온 것 같았다.
너는 이제 나의 젖은 얼굴을 닦아 줄 수가 없다.
머뭇거리던 손 끝을 가지런히 모은 너는 먼저 길을 나선다.
나는 홀로 남아 얼굴을 쓸어내리고 창 밖을 본다.
마지막 인사를 곱씹어 보고 마지막 감정을 갈무리한다.
이제 나도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나는 카페를 나와 네가 없는 길을 나선다.
병동에서
봄비
똑같다.
내 손은 항상 축축히 젖어있었다.
추운날에 꽁꽁 얼어붙으면서도 축축한 내 손이 싫었고,
시험날만 되면 시험지를 적셔 찢어버리던 내손이 싫었고,
네 앞에 서면 더 심하게 젖었던 내 손이 싫었다.
장대비가 우산을 강하게 내리치던 그 날
두개의 우산이 나란히 걸었다
나는 너를 의식하지 않으려
자꾸만 미끄러지는 손잡이를 쉴 새 없이 고쳐 잡았다
갑자기 네가 나를 본다.
결국 우산을 놓쳐버렸다.
너는 조용히 그리고 끈질기게 나를 본다.
네가 우산을 접는다.
그리고 내 손을 잡는다.
우리는 따갑게 내리는 빗속을 달렸다
한참을 그렇게 달리다 멈췄다.
너는 몸을 돌려 다시 나를 본다.
잡고 있던 내 손을 자신의 손 위에 올린다.
똑같다 우리.
그렇게 내 손바닥에 입을 맞춘 너는
매일 매일 내 손을 잡아주었다.